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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학교 2014.03~2015.01엄마는 일단 운전면허부터 따라고 하셨다. 사회생활 하는데, 운전면허는 필수라고 하셨다. 그래서 학원을 등록하고 연수를 시작했다. 필기는 그럭저럭 합격했지만, 실기에서 긴장을 많이 해, 3번이나 시험에 떨어졌다. 상심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시험을 볼 도로 코스를 다 외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스마트폰으로 도로주행 영상을 다운받아 반복해서 봤다. 한 50번 본 것 같다. 그리고 시험을 보니 단박에 붙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을 하다가, 광고 배너에 [직업전문학교]라는 걸 보았다. 호기심에 글을 클릭해 보니, 국가에서 10개월동안 교육과, 생활비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기회인 것 같아 그날로 등록을 했다. 절차는..
생각1 나에게 있어 가장 빛나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지금이라고 답할 것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지금만큼 신체적, 정신적인 상태가 좋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깡통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실을 다져, 자신감을 쌓아놓았고, 지금도 채우고 있다. 요즘에도 우울이 올라오고, 인간관계가 힘들고, 멘탈이 흔들릴 때가 있지만, 이제는 감정을 추스리는 법을 알기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기분이 행복하거나 기쁘지는 않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을 걸 알기에, 나에게 기쁨과 행복은 사치인것 같다. 그저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부모님이 주신 몸 잘 쓰는 것, 그리고 삶에 여..
편입시험 2013.01~2014.022013년 12월부터 고려대를 시작으로 대학들마다 편입 시험을 시작했다. 나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후반에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자신이 없었고, 그리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내 의지로 죽을 순 없다는 걸 알기에 반쯤 정신나간 사람처럼 도서관과 집, 그리고 PC방과 오락실을 드나들었다. 1월이 되니 수도권 대학들도 편입 시험을 시작했다. 나는 인천대를 지원했다. 인천대는 송도에 있었는데 지하철로 2시간 거리였다. 시험장에는 편입학원 선생님과 교직원들이 와 있었다. 그들 중 내 담당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곤 시험은 잘 보고 있냐고 했다. 나는 그냥 그럭저럭 보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중간에 아프지만 않았어도 좋은 결과가 있었을텐데...' 하면서..
무기력2 2012.09 ~ 2013.019월부터 다시 학원을 다녔다. 멘탈은 바닥을 쳤고, 이제와서 공부를 한들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입에 대한 뜻은 더이상 없었지만, 집을 벗어날 도피처는 필요했기에, 가족들에겐 그냥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학원에선 내리 잠만 잤다. 공원에서 자고, 독서실에서 자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잤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게 귀찮았다. 씻는것도 귀찮아서 일주일 동안 세면을 안 한적도 있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즐거움이란 감정을 느낀 건 늦은 밤, 침대 위에서 태블릿으로 아프리카 게임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게임방송 화면과 구석에 쉼없이 올라오는 채팅들을 보며 약간의 즐거움과 내면의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다.하루하루를 축내..
동굴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다. 마모된 나사를 돌리는 것처럼 기침을 해도 목 속 가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심장이 굳어간다. 붉은 심장의 표면에 딱지가 지고, 뿜어내는 혈액은 걸쭉해진다. 몸은 축 늘어진다. 사지가 저리고, 감각은 무뎌진다. 얕은 기침에서 쇳소리가 난다. 몸도 마음도 꽉 닫힌 채 나의 목소리는 작아져 간다. 외치고 싶고 소리지르고 싶은 생각은 성대까지 다다를 수 없다. 나는 침묵한다. 스스로를 잠그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누구도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 채 동굴 깊숙히, 나의 응축된 고민을 가지고 들어간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빛이 작별 인사를 고한다. 빛은 사라졌다. 나는 깊고 따뜻한 어둠속에 안긴다.
행복 행복은 과거형이라 생각한다.삶에서 겪은 모든 일들에서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가망각에 의해 가지치기 당하고 남은 기억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남는 것이다.내가 미래에 가질 행복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무기력 2012. 08월퇴원 후 부모님은 한달 쉬고 9월달부터 학원을 다니라고 하셨다.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날씨는 너무 더웠고, 선풍기에 의존하며 TV앞에 하루종일 있었다. 도서관에 갈 생각도 했지만, 기운이 없어 가지 않았다.MBCeveryone 이라는 케이블 채널이 있는데, 무한도전을 하루종일 틀어줬었다. 아침9시에 엄마가 일을 나가면 그걸 보는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멍하니 TV를 보면서 수동적인 웃음을 지으며 시간 관념을 지웠는데, 배고픔을 넘어 굶주림을 느낄 때가 되서야 벽걸이 시계를 봄으로써 나의 시간과 세상의 시간을 동기화하곤 했다.점심에 밥을 먹으면 2시가 조금 넘었다. 하루 중 제일 더운 시간이었다. 마루 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했다. 3인치 겨우 넘는 작은 화면으로 집에서..
입원 2012년 07월또다시 두려워졌다. 다시금 실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두려웠다. 심장이 조여오고, 7월의 더위가 나를 힘들게 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의사선생님은 걱정하는 얼굴로 입원을 하자고 했다. 그날로 바로 입원했다. 동생과 같이 학원에 가서 짐을 챙겼다. 학원 선생님에겐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고 둘러댔다.입원을 하고 첫날은 2인실에서 잤다. 침대는 조금 딱딱했지만, 내 방 침대보다는 나았다. 옆자리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간병하고 있었다. 부인인 듯 했다. 악을 먹고 나는 10시도 안되어서 곯아떨어졌다.아침 7시가 되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환자와 간호사들이 음악에 맞춰 체조를 했다.나는 하기 싫었지만,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했다. 식사는..